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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누리 : 춤 활성화 해법 찾기
 춤세상    | 2005·06·28 01:12
출처 - 춤카페 http://cafe.daum.net/koreadanceworld



춤 비전 구축을 위한 해법 찾기

-김 채 현



   지난해 9월 기초예술연대는 연속 포럼 ‘문화예술위원회 전환과 새 예술정책 실천방안’을 열은 바 있다. 그 일환으로 열린 ‘참여정부 새 예술정책의 효율적 실천을 위한 공연예술 현자의 제언’ 속에서 춤계 현실 진단과 춤정책 과제가 주제로  발표되었다. 이 글은 당시 발표된 내용과의 중복을 피하고 세세한 내용을 피력하기보다 큰 현안을 중심으로 춤계의 비전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춘다.

   1. 정책과 예술계 매너리즘의 심화

   예술은 문화의 꽃이다. 문화 일반에서는 정서와 품격, 포괄적 정체성을 습득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예술은 인간적 가치 환기, 개별적 정체성 습득, 상상력과 인식 변화, 그리고 인간 구원을 실현할 수 있다. 이런 수월성 때문에 예술은 문화에 속하면서도 나머지 문화 일반과는 구분된다. 그래서 예술, 즉 기초예술은 공공성을 높이 평가받으며, 이는 예술을 정책의제화시키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일부를 제외하고 예술은 시장원리에 적합치 않다. 그것은 예술이 일반 상품과는 질적으로 다른 세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선호도가 높은 예술작품이나 장르가 시장경제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일반인들이 그런 작품이나 장르의 메카니즘에 친숙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공공성 관리 측면에서 대부분의 예술은 시장원리가 아닌 별도의 정책 수단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 정책 수단은 예술을 시장 경쟁에서 보호하여 예술이 고유의 세계를 유지하고 공공성을 실현하도록 하는 장치이다.
   기초예술에 대한 우리의 주요 정책 수단은 그동안 하드웨어 인프라 건설과 지원 시책이었다. 두 가지 모두 그렇겠지만 특히 지원 시책의 성과에 대해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다. 그 원인으로 문예진흥원의 체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으며 그래서 문화예술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중시해야 할 원인도 있다. 90년대초까지 독재 체제는 예술을 공공성이 아닌 체제 수호 측면에서 관리하였으며 정책에서 예술과 그 특수성은 질적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대중주의적 관점에서 다다익선의 예술 창작과 향수가 강조되었다. 2000년부터 향수 부문 예산이 창작 부문 예산을 상회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단적으로 예술과 그 특수성을 질적으로 고려해서 반영하는 시책보다 양적 지원 시책이 우리의 기존 예술 정책의 자화상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지원 시책의 성과가 낮았다고 할지라도 그 원인을 문예진흥원 기존 체제에서만 찾는 것은 향후 기초예술 정책의 초점을 흐리게 할 수 있고, 기초예술의 공동화(空洞化)를 심화할 가능성마저 우려된다.
   양적 지원 시책, 즉 지원금 배분 시책에서 기초예술의 특수성이 질적으로 고려되지 않았던 사실은 문화예술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에 대해 현장 예술인들이 미온적 반응을 보인 데서도 찾아진다. 이 말은 양적 지원에 치우친 관행은 기존 정책을 상징하며 그러한 관행이 기존 정책에 대해 불신을 키웠고 문화예술위원회 체제로의 전환 예정이라는 계획만 갖고 그러한 불신을 불식시키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면 양적 지원 시책에서 소홀했던 기초예술의 특수성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그것은 창작과 창작인이 중심이 되는 세계의 특수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양적 지원 시책은 이 세계를 활성화하는 데 성과가 미흡했고 심지어 실패했다는 뜻이다. 근래에 운위되는 창작과 유통과 향수의 선순환 구조도 우수한 창작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기초예술이 시장원리에 적합치 않다는 것은 그것이 주문 생산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며 따라서 향수 즉 소비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기초예술 생산에 의해 기초예술 소비가 창출된다. 지원이 오랜 세월 시혜와도 같은 인상을 주어왔으며, 구시대의 공정치 못한 지원을 비롯하여 유사한 폐단들에 의해 창작력 고양은커녕 악화가 양화를 내모는 부작용도 작지 않았다.
   독재 시절에도 예술을 정책의제화해서 공공성을 구체적으로 인정하긴 하였으나 예술에 고유한 세계의 질서는 억압되었고, 사실상 예술의 공공성은 왜곡되거나 억압되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양적 지원 시책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예술의 공공성이 왜곡되었다고 지적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복합적인 세태의 결과 기초예술계에 근본적으로는 매너리즘이 뿌리를 내렸다고 본다.
   이제 와서 예술이 인간적 가치 환기, 개별적 정체성 습득, 상상력과 인식 변화, 그리고 인간 구원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 기초예술인들만의 고독한 구두선이 된 듯하다. 시대 추세가 그래서, 디지털 시대라서 고독한 구두선을 피할 수 없다면 문화예술위원회 발족은 불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문화예술위원회 전환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책이 기초예술계의 해묵은 매너리즘을 불식해서 창작을 진흥시키고 창작-유통-향수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 예술의 공공성을 진작시키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즉 기초예술의 시장 실패에 대해 지원 시책은 책임은 크다. 문화예술위원회는 그러므로 지원 시책을 비롯하여 문화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고, 실제로 기초예술계에서는 정책이 환골탈태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문화예술위원회 발족을 계기로 사실상 지원 시책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정책이 전반적으로 그리고 대대적으로 재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책이 능사도 아니며 또한 새로운 정책은 새 출발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기초예술 정책은 도로 건설 정책과 다르다. 기초예술 정책의 세부 시책들은 특히 물리적으로 검증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시책의 모든 면에서 질적인 척도가 중시된다. 뿐더러 각 예술 분야마다 정책 수단인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것도 아닐 것이다(그러나 그 영향력은 컸다). 이전에도 그 비중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정책이 만능해결사도 아니며, 또한 그간의 정책에서 폐단이 농후하였다고 하더라도 정책에다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는 어렵다. 정책의 폐단에 편승하여 기초예술계를 악화시킨 것은 정책의 인과응보인가, 아니면 예술인의 책임인가? 이런 이유에서 어떤 형태로든 새 예술 정책이 주효하려면 적어도 정책 관련인들(정책 수혜자 포함)의 주체적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20세기 후반부터 지적 조건과 담론이 변화하고 삶의 방식과 활동 조건이 변화함으로써 기존 능력과 해법을 마비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주체의 능력을 변환시키는 변혁이 중시되는 것이며, 정책은 이를 유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2. 위기의 소재 확인

   기초예술계가 어렵다는 진단은 기정사실이다. 지금 기초예술계의 인식은 그러하다. 기초예술계는 그런 인식을 외부에서도 공감하고 외부의 주체들이 기초예술 살리기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급선무라 보고 있다.
   논의의 편의상 먼저 춤계에서 그동안 개진된 어려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공연 현장에서 관객층 감소가 피부로 느껴지고 춤의 자립은 더 요원해지고 있다. 2) 춤 제작비가 상승해서 지원금이 공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승하고 있다. 3) 공립 무용단은 안정된 여건 속에서도 공연이 일반인들과의 공감대가 약하다. 4) 국내 대형 극장들의 기획에서 춤은 점차 외면당하는 추세에 있다. 5) 춤 전공 지원자 수는 감소일로에 있다. 6) 춤의 국제 경쟁력이 높지 않다.
   이러한 어려움은 춤의 위기, 그리고 기초예술의 위기를 지적하는 사례로 내세워지곤 한다. 만약에 이상의 어려움을 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위기 해결책으로서 관객층을 불리고 춤의 자립도를 높이며 지원금을 늘리는 등의 대책을 세우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식의 해결책이 위기 극복에 실효가 있을지 의문을 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이렇게 반문하는 것은 위기의 증상과 위기의 실체를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위기의 증상(현실적 어려움)은 어디까지나 위기의 증상이지 위기 그 자체는 아니며, 현실적 어려움은 위기의 결과이자 상징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증상과 위기의 원인을 혼동하는 경우도 흔한 같고, 이런 경우 대체로 춤의 위기를 향수 즉 소비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 일례로 공연 현장에서 관객층 감소가 피부로 느껴지고 춤의 자립이 더욱 요원해진다는 진단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 진단만 본다면 위기는 분명 춤 소비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해결책도 소비 영역에서 찾아져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자문해 보자. 춤의 관객층 감소를 반전시킬 대책으로는 훌륭한 창작품이 기본일 텐데, 춤계에서 내세울 레퍼토리는 얼마나 있는가? 춤계에서 내세울 레퍼토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층은 감소하는가, 아니면 레퍼토리가 빈약하여 관객층이 감소하는가? 상반된 전제이긴 하지만 두 가지 경우 각각에서 그 이유는 무엇인가?
   춤 관객층이 모든 공연에서 일률적으로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대형 극장이나 대형 기획행사에서 추진해온 기획 프로그램이 예증하다시피 춤도 자립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런 작품들은 유감스럽게도 예외 없이 국내 초청받은 해외 작품이다. 이런 사례 앞에서는 춤이 자립성이 없다는 지적이 무색해질 뿐더러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춤이 여전히 존재할 가능성을 대변한다. 물론 대량 생산 시대에 공연예술처럼 이른바 수제품은 사회적으로 그 존재 가치가 인정되면서도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시장 실패를 만나기 쉽고 그래서 공공 정책으로 지원하고 보호하는 것이 전세계 공통의 관행이다. 다시 말해 춤의 자립은 상당히 제한된 의미에서의 자립일 테지만 우리의 춤이 이처럼 제한된 의미의 자립성을 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낳는 것이 현실정이다.
   일반 공연예술처럼 춤계도 현장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공연예술에서 지칭하는 현장은 공연이 수행되는 상당히 추상적인 시장이지만, 시장의 특성상 해당 분야의 현실이 집결되는 곳이다. 현장에서 해당 분야의 어려움은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또 해당 분야의 어려움 가운데 관심을 끄는 빈도가 가장 높은 것도 현장에서의 어려움이다. 그러므로 현장의 어려움을 치유하면 해당 분야가 순조롭게 발전하겠다는 판단이 들지도 모른다.
   앞에서 지적했지만 현장의 어려움은 대개 위기의 증상에 해당하는데, 이를 위기의 실체로 착각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를 풀기 위해,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러한 시도가 대개는 현장에 집중된 것은 어려움의 증상과 어려움의 원인을 동일시한 때문은 아닌지 다시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3. 춤 공연 소비와 생산

   소비(공연 수요)와 생산(공연 창작)은 분리되지 않는다. 소비가 있는 곳에 생산이 있고, 생산이 있는 곳에 소비가 있다. 춤 생산이 있어야 춤 소비가 가능하므로 창작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춤 생산이 소비를 염두에 두고 이뤄진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생산과 소비의 부조화에서 소비 쪽의 무관심과 무신경을 탓하기에는 그 부조화가 매우 심각하다. 절대적 수치로 보면 춤 공연이 적다 많다 단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소비와 비교한 상대적 수치로 보면 춤 생산 과잉 상황이 아닌가 한다. 이 또한 여타 공연예술계의 상황과 엇비슷할 것 같으며, 가령 초대권 남발에서 이런 상황을 되짚어보게 된다. 생산 과잉 같은 상황이 심각한 이유는 무엇보다 무용인들에게 경제적 압박을 가중시키는 때문으로 보이며, 한편으로는 춤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절대 수치로는 과잉이다 아니다를 단정해선 안 되지만, 결과적으로는 춤 공연 과잉 현상이 초래되고 있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소비 단계에서 춤의 경쟁력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90년대 이래 공연물로 소비되는 장르는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졌고 축제, 사교 활동 및 유사 공연물을 비롯하여 공연 행사의 수도 훨씬 늘은 것으로 관측된다. 또 영화가 기초예술 관객의 상당 비율을 점유하는 중에 있고 인터넷 공간 역시 점차 공연예술의 경쟁상대로 떠오르고 있다. 관람자는 향유자이면서 어차피 소비자이며 그들의 선택과 공연의 품질은 무관하지 않다. 춤의 경우 이런 신생 현상들과 비교해서 경쟁력이 낮아 본의 아니게 춤 공연 과잉 현상이 초래되고 있다.
   그리고 생산 단계에서 춤 창작은 매우 권장되고 있다. 춤 창작은 언제나 권장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앞으로도 춤 창작이 늘어날 가능성은 상존한다. 창작과 표현은 기본권에 속하는 이상, 이를 탓하기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 단계에서의 문제는 커 보인다. 춤 현장이 창작 공연 행위 중심으로 형성되고 창작 공연 행위에 수반되는 어려움이 쉽게 그리고 빈도 높게 주목을 끌기 마련이므로 춤계에 대한 공적 지원도 창작이나 공연 행사에 대한 직접 지원이 대종을 이루어왔다. 90년대 중반부터 이런 추세가 춤 생산 과잉 현상을 부추겨온 것으로 판단된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각 시도의 지원 역시 창작 그리고 향수 기회 학대를 겨냥한 창작 사업에 집중되고 있다. 대부분 지원 사업이 일부 지원을 전제로 하며, 전체 춤 공연 행사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할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하여 지원 사업이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지 논란이 제기될 수 있겠으나 지원금이 이른바 기본 자금(종자돈)으로서 큰 힘을 발휘하는 면은 인정된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요약하면, 춤 창작이 권장되고 있으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현장 경쟁력이 낮아 춤 공연 과잉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매우 부분적인 진단이겠지만, 춤 공연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면 어려움은 타개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럴까.

   4. 변신: 정책과 현장

   문화예술위원회는 문예진흥원을 승계하되 다르다. 문화예술위원회는 그동안의 지원 시책이 독임제로부터 합의제로, 지원 배분으로부터 토양 조성으로, 단편적 현장 관리로부터 포괄적 현장 조정으로 탈바꿈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문화예술위원회의 발족을 계기로 적시되는 이러한 변화에서 당연히 그간의 지원 시책의 한계를 재확인하게 되며, 이에 따라 현장의 어려움이 해소되기를 기대하는 바가 크다. 다만 문화예술위원회가 전체 문화예술 정책 내에서 차지할 위상 등이 모색되는 현단계에서 전망하자면 그러한 여망이 얼마나 충족될지는 미지수이다.
   기초예술이 시장에서 도태되는 사태를 시장 실패라 하며, 이를 정책 실패의 근거로 삼는다. 그런데 기초예술을 시장에서 도태시키는 요인으로 창작 부진, 생산 방식의 특수성, 양식의 후진성과 시대 부적응, 신생 경쟁 장르 출현, 기획력과 마케팅 부실 등이 들어지지만 이들 각 요인에 대해 정책이 직접 책임져야 할 점이 무엇인지 답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정책 지표의 불명확성, 현장과의 유리감, 그리고 기초예술보다 문화산업에 치우친 예산 배분이 정책 실패의 주요 논거로 제시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논거는 부인할 수 없으며, 특히 문화산업에 치우친 예산 배분의 경우 기초예술 관점에서 보면 신생 산업 장르와의 상대적 불공정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이 컸다고 본다. 물론 예산 배분에서 신생 산업 장르에 중점을 두는 이유로 들어지는 전체 국익 증대, 문화 기반 조성 같은 효과를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기초예술에 비해 시장 적응이 훨씬 용이하고 시장 생산도 가능한 신생 산업 장르에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결과 기초예술의 경쟁력을 상대적으로 저하시키고 입지를 좁힌 것은 사실이다.
   원인 없는 결과 없다. 기초예술 공동화와 같은 현상은 사실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뿌리가 깊다. 그러면 기존의 원인을 제거해서 춤의 비전을 세우면 그대로 실행될 수 있는가? 정책 부실과 매너리즘의 확대는 아무튼 기초예술의 공동화처럼 문제를 키웠다. 반사적으로 무능력과 왜곡이 심화되면서 문제의 해결을 수월치 않게 만들었다. 아울러 앞서 지적한 말을 다시 강조해보겠다. 20세기 후반부터 지적 조건과 담론이 변화하고 삶의 방식과 활동 조건이 변화함으로써 기존 능력과 해법을 마비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주체의 능력을 변환시키는 변혁이 중시되는 것이며, 정책이 이를 유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을 전제하며 춤 비전을 세워 보자.

   1) 매너리즘 타파: 근대적 경험에 의하면 춤 매너리즘은 역사적 유산이다. 그것은 부실한 춤 교육과 연줄 유통으로 상징된다. 비민주적이며 소모성 짙은 춤 정책이 이를 키우고 확대한 것이 문제였다. 정책에 대해 환골탈태를 요망하는 그 만큼 교육과 창작 현장도 매너리즘을 씻는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대학은 자체적으로 춤 교육 과정을 3분법을 벗어나 창작/실기/학술/실용 전공으로 개편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정책적으로나 춤계 자체적으로 유능한 춤 창작자를 공신력있게 발굴 등용시키는 여러 관문을 육성할 만하다.
   2) 정책의 제반 과정 재조정: 이전의 문예진흥원 체제와는 달리 문화예술위원회 체제는 직접 지원 앞서서 춤 정책의 기본틀을 관리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준하여 춤 교육-춤 창작- 춤 유통-춤 향수를 같은 맥락에 두고 구체화하는 정책 방안이 가능하다. 그간의 단편적이며 고립된 지원 시책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방향으로 시책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책으로 채택된 사업 가운데 지속 사업에 대해 그간에는 지속 지원을 관행으로 하되 평가는 유명무실하였다. 이로 인해 사업의 매너리즘이 조장되는 만큼 기획성의 지속 사업에 대해 평가를 통해 주최자를 교체할 수 있는 관행을 제도로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3) 창작 여건 진작: 지원 정책부터 지금까지의 시혜성 분배보다 육성형 분배로 달라져야 한다. 단일 창작에 다수에게 지원하는 것은 여러 이유에서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창작의 개인적 측면에 앞서 공적 측면으로서 개선할 것부터 개선하자는 말이다. 즉 공연장 부족 또는 부실한 공연장 때문에 허덕이는 현실이 창작의 부실을 초래하는 정도는 심각하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공연장 정비와 재구축 그리고 공공 연습실 확보를 큰 정책의제로 설정해야 하며, 극장에 대해서는 춤 공연(혹은 기초예술) 대관 보조금 지원제를 통해 춤 공연을 다수 유치하도록 유도하고 창작자는 부담을 덜도록 한다. 아울러 극장 내의 전문 인력 확충과 리허설 기간을 늘리는 대관 전략은 춤 공연의 부실화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
   4) 창작 활성화: 원래 창작활성화는 춤과 인접 분야의 결합을 유도해서 콘텐츠 측면에서 춤 창작이 충실해지도록 하자는 취지로 시행되었다. 기존의 창작활성화 사업은 시혜성 사업이 아니었으나 시혜성 사업으로 흘렀다. 그 결과 춤과 다른 요소의 결합이 긴밀치 못하여 부실한 창작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서 벗어나 먼저 창작 활성화를 위해 소액이라도(꼭 고액이라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안정적인 지원 시책이 시급하다는 것은 이미 결론이 난 편이다. 이 시책은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여러 단체를 모아 열리는 춤축제나 춤제전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
   5) 춤 유통 경로의 다변화: 극장 내에서의 충실한 공연이 기본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의 유통 경로는 매우 단순하여 한계가 있다. 인터넷 환경과 오프라인에서 춤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안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고, 이는 정책적 지원 대상으로 수렴되어야 한다. 아울러 활용도가 낮든 높든 공공 문화시설에 춤단체를 산하단체가 아닌 상주단체로 두면 유통 경로가 확충되는 효과가 클 것이며, 이에 대해 일정한 보조금을 지원한다.
   6) 인재 육성: 훌륭한 춤 환경은 훌륭한 조직과 사람이 만든다. 전반적으로 춤 교육은 대학원 과정에서마저 충실치 않다. 그래서 재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대학 이후 과정으로 창작/유통/향수 부문에 종사할 전문가들을 6개월 정도씩 재교육하는 방안을 말한다. 별도의 교육기관이 아니라 문화센터 같은 차원의 민간 프로그램을 발굴 지원한다.
   7) 국제 교류의 전략화: 산발적으로 이뤄지는 국제 교류의 효율성은 낮다. 국제 교류 기준 역시 산만하다. 국제교류에 대해 방안이 백출하고 그만큼 의욕도 있다. 이것이 춤계의 강점이다. 우선은 일례로 국제교류재단을 중심으로 춤 교류 사업을 집결하고 재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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