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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대해 : 향악정재(鄕樂呈才)의 종류와형태
 EsangDance    | 2005·01·10 15:26
향악정재(鄕樂呈才)의 종류와형태


보상무(寶相蕪)

이조 말기 순조 때에 새로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이며 이는 보상반(寶相盤) 이라는 둥근 상 옆에 꽃을 받들 어쥔 무녀와 글발을 받는 무녀 둘이 보상을 향하여 마주서고 춤을 추는 무녀들은 세 줄로 나누어 서서 춤을 춘다 . 이 춤의 절차는 「포구락(抛毬樂)」 춤의 절차와 같다.

초 무(初舞)

숙종45년에 향악정재(鄕樂呈才)로 창작되었으며 이 춤은 창사(唱詞)가 없어 "태평춘지곡(太平春之曲)"에 맞추어 춤춘다. 두 명의 무용수가 발구름 동작을 하며 나가 섰다가 북소리에 따라 손을 이마에 번갈아 가며 대고 춤을 추고 손을 여미고 발구름 동작을 하며 물러나는 춤이다.

첨수무(尖袖舞)

영조 때에 향악정재무(鄕樂呈才)로 창작된 춤이다. 이 춤은 궁중의 외연에서만 쓰였으며 「검무(劍舞)」를 춤추기 전 서무(庶務) 형식으로 춤추어졌다. 연귀소(燕歸巢)·연풍대(蓮風臺)의 순으로 춤추며 손바닥만 이리저리 뒤졌다 엎었다 하면서 추는 춤이며 그저 칼을 들고 하늘거리기만 하는 춤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엽무(葉舞)」라고도 한다.

공막무(公莫舞)

영조(1724∼1772) 때에 향악정재(鄕樂呈才)로 창작된 춤이다 이는 칼을 든 다음 추는 춤이며 궁중의 내연에서 춤추었으며 「첨수무(尖袖舞)」와 같이 두명이 마주앉거나 서서 추는 춤이다. 춤의 내용은 항장 검무에서 연유된 춤이며 순조 때에 의하면 상투처럼 만든 모자를 쓰고 패랭이 꽃을 그린 전복(戰服)을 입고 각각 칼 두 자루씩 쥐고 춤추었다고 한다.

검기무(劍器舞)

신라 때의 황창랑(黃昌郞舞)로부터 시작하였으며 민간에서 추어졌던 춤을 궁중에 도입시킨 춤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순조때 익종에 의해 궁중의 상연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한편으로는 기생과 민간에까지 알려저 유희 무용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음악을 연주하면 악사가 칼을 무대 가운데 놓고 나가면 무인들은 상대무(相對舞)를 추다가 위치를 바꾸며 상배무(相背舞)를 추다 다시 상대무(相對舞)를 추다 마주 앉아 칼을 희롱하다 다시 칼을 들고 이리저리 휘드르며 춤춘다.

경풍도

조선 순조 28년 때에 창작된 춤이라 보여진다. 이 춤은 풍년을 경축하는 춤으로서 민간에서 시작하여 궁중무용으로 도입한 춤이며 단른 정재무와 그 형식이 같다. 다섯명의 무용수가 풍년 노래를 부른 다음 선모와 무용수가 춤을 추며 마지막 단락에서 선모뒤에 다섯명의 무용수가 상대무(相對舞)를 하고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춤을 추며 선모를 중앙에 두고 원을 돌며 춤을 춘다. 다시 처음 대열로 돌아가 손을 여미면서 발구름 동작으로 물려나면 끝이 난다.

고구려무(高句麗舞)

수나라의 춤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으며 조선 순조 때에 창작된 궁중무이다. 고구려에 관한 옛 시를 창사(唱詞)로 부름으로써 옛날을 회상하게된 춤이다. 여섯명의 무용수가 손을 여미고 발구름 동작을 하면서 등장하면 창사(唱詞)를 부른다. 그다음 서로 마주 서서 춤을 춘다. 이 형식은 엽무(葉舞)와 같으며 동작은 정재무와 같이 상대무(相對舞),상배무(相背舞),회수무를 추면서 나왔다 들어갔다 반복한다.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

순조때 예제로 쓰였다고 문헌에 나와 있다. 가인전목단 (佳人剪牧丹)은 궁중무용이기도 하지만 이 춤은 순조 때 세자가 송나라의 모란꺽기춤을 본받아 새로 창작된 춤이다. 「모란꺽기춤」이라고 모란 꽃가지와 한삼자락을 날리며 추는 민간 무용이기도하다. 8명 혹은 12명의 무용수들이 모란꽃을 꺽어 들고 즐기는 춤이다. 모란꽃의 항아리 주위에 원을 그리며 춤을 추며 상배무(相背舞)에서 상대무(相對舞)로추다 꽃을 희롱하는데 "함령지곡(咸寧之曲)"에 맞추어 창사(唱詞)를 부른다. 어깨를 맞대기도 하다 처음대열로 돌아가서 춤추고 물러나면 춤도 끝난다.

만수무(萬壽舞)

순조 때의 향약정재(鄕樂呈才) 이며 족자 일인과 원무(圓舞) 오인으로 구성된 향악 이다. 춤의 내용은 봉건 왕조의 만수무강을 축하드리는 춤이며 「헌선도(獻仙桃)」를 모방한 춤이기도 하다. 족자 1인이 발구름을 하며 앞으로 나가면 그후 창사(唱詞)를 부른다. 창사가 끝나면 선모와 무용수들이 손을 흔들면서 발구름을 한다.

춘앵전

조선 순조(純祖)28년(1828) 때 효명세자(孝明世子) 익종이 창작한 춤이다 익종이 버드나무의 꾀꼬리 소리를 듣고 창작한 무용이다. 손종숙왕후(純宗肅皇后)의 보령(寶齡) 40세를 경축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도 하다. 길이 6자의 화문석 위에서 춤추며 그 춤의 율동이 매우 아름답고 고전적 독무(獨舞)현상의 높은 기교를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화전태는 흰이를 보여 곱게 웃음짓는 미롱(媚弄)으로서 이춤의 백미이다. 반주음악은 평조회상(平調會相)

무산향(舞山香)

순조 28년때 예조로 쓰이던 향악정재(鄕樂呈才)로 창작된 춤이다. 대모반(玳瑁盤) 위에서 춤추는 독무(獨舞)이며 이 춤은 무동만이 춤추게 하였다.
형식은 「춘앵무」와 비슷한 점이 많다. 손을 여미고 발구름을 하며 대모반(玳瑁盤) 중앙에 들어서면 창사(唱詞)를 부른다. 창사가 끝나면 뿌리치면서 춤추거나 회선(回旋) ·족도(足蹈)등 다른 정재무와 같다.

박접무(撲蝶舞)

이 춤은 순조 연간에 제작된 것으로 동왕 28년(1828)진작의궤(進爵儀軌)에 이 춤에 대한 무복(舞服)이 소개되어 있으나 확실한 연대와 창작자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6명의 무용수가 "함녕지곡(咸寧之曲)" "만정방(滿廷芳)" 의 두 곡조의 반주에 춤을 춘다. 춤의 복장에는 범나비가 그려저 있으며 내용도 범나비의 형상을 주제로 한 것이다. 6명의 무용수가 상대무(相對舞)하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다가 남쪽과 북쪽을 향하여 춤추고 줄을 지어 춤을 추다 다시 상대무(相對舞)를 춘다. 북쪽을 향하여 춤을 추다 손을 여미고 물러나면 춤도 끝을 맺는다.

선유락(船遊樂)

순종 때에 이르러서 궁중의 향악정재(鄕樂呈才)로 규정 지어졌다. 곱게 단장(丹粧)한 채선(彩船)을 준비해놓고 여러 무용수들이 나누어 서서 배가 가는 모양을 하며 뱃줄을 끌고 이선가(離船歌)와 어부가(漁父歌)를 노래하며 춤을 춘다. 동기 2인이 배에 올라 닻과 돛을 잡고 여기 2인은 뱃전 좌우에서 뱃줄을 잡고 내무(內舞)하며 32인은 밖으로 외무(外舞)한다. 집사기(執事妓)의 대청분(待聽分)에 따라 징을 세 번 요란하게 치면 어부사를 병창(竝唱)하며 춤을 춘다.

침향춘(沈香春)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무 이다. 구성은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과 비슷하다. 봄의 향기를 짙게 풍기는 춤이기도 하다. 무녀들이 모란 꽃병을 둘러싸서 추는 춤이다. 심향산은 판으로 산을 만들고 앞뒷면에는 봉우리를 가목으로 새겨 붙인다. 철,탑,승불,사슴등을 잡상으로 산 모양에 색칠을 한다. 앞면에는 연꽃을 좌우 복도에는 꽃병을 설치 구슬을 단 모란을 꽃고 안에는 큰 연꽃통을 설치하고 밑에 4개의 바퀴를 달아 굴러다닐 수 있게 하였다.

영지무(領地舞)

순조때에 창작된 춤으로 향악정재 (鄕樂呈才) 이다. 선녀의 그림자가 비친 것을 망학대무에서 바라보았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그 내용을 이루고 있다. 6명의 무용수가 영지를 가운데 두고 각각 3명식 나누어서 영지의 앞뒤에 서서 추는 춤이다. 궁중무용의 쇠퇴기로 인하여 크게 보급되지 못하였지만 무대규모와 형식면에서 화려하다. 하지만 예술적 가치는 그리 크지는 못하다.

항령무(響鈴舞)

순조 때에 와서 향악정재(鄕樂呈才)로 민간에서 추어지던 춤을 격식을 갖추어 재편성한 춤이다. 두 손에 방울을 흔들고 뿌리치면서 추는 춤이다. 춤의 특징은 좌우로 한번씩 같은 동작을 두 번 반복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손을 여미고 발구름 동작으로 물러나면서 끝난다.

헌천화(獻天花)

조선 순조 때에 알려지고 있는 향악정재(鄕樂呈才) 이다. 이 춤은 하늘에 핀 꽃을 선녀가 뿌렸다는 이야기를 춤으로 형상화한 무용이다. 선모 1명, 무용수 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당악정재(唐樂呈才)인 「헌선도(獻仙桃)」와 비슷한 동작으로 되어있다.

관동무(關東舞)

헌종때 진찬의궤(進饌儀軌)에 처음으로 기록되어진 향악정재(鄕樂呈才) 이다. 춤의 내용은 "관동별곡(關東別曲)"과 비슷하며 관동산수의 아름다움을 가무로 만든 것이다. 8명의 무용수가 반으로 나누어서 들어갔다 나왔다 또는 빙빙 돌면서 춤춘다. 동작은 다른 정재무와 흡사하다.

첩승무(疊勝舞)

조선 순조28년 때에 창작된 향악정재무 이다. 이 춤은 노래가 중심으로 되어졌으며 포구락(抛毬樂)을 모방한 춤이기도 하다. "태평춘지곡(太平春之曲)"을 연주하면 무녀6명이 춤추며 1첩부터 10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간식 춤사위를 바꾸어가며 춤춘다.

춘광호(春光好)

순조 때부터 상연된 향악정재무 이다. 부왕(父王)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하여 창제되었다. 무원(舞員)6명이 북쪽에 둘, 남쪽에 둘, 동쪽에 한사람 서쪽에 한사람씩 서서 봄처럼 화사한 춤사위를 벌인다. 내용은 봄의 따스한 햇살이 궁궐에 비추어 즐겁다는 것을 노래와 춤으로 만든 것이다. 춤은 "풍경지곡(豊慶之曲)"에 맞추어 춤춘다. 6명의 무용수로 이루어 졌으며 북쪽에2명과 남쪽에 2명 동과서에 각 1명식 퍼져서 춤을 춘다. 무보는 「심향춘」의 무보(舞譜)와 같다.

사선무(四仙舞)

순조 때에 상연된 향악정재무 이다 . 춤의 내용은 영랑(永郞)안상(安祥) 남석행(南石行) 술랑(述郞)이 조선의 수려한 산수를 다니며 놀다가 창작한 것으로 금강산의 무선대에서 취무(醉舞) 하였다는 전설에 근거하여 태평성대(太平聖代)의 내용을 가무(歌舞)한 것이다.

광수무(廣袖舞)

고려때 궁중에서 연행되던 향악정재무 이다.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2명의 무원이 "풍경곡"에 맞추어 춤춘다. 숙종 이후 1901년 무렵까지 계속 상연되었다.

망선문(望仙門)

순조 연간에 제작된 춤으로 봉작선(奉雀扇) 4인 집당무(執撞舞) 2인으로 구성 되었으며 음악은 향당 교주에 따라 봉작선(奉雀扇) 4인에 이어 집당(執撞) 2인이 나가면 , 작선은 곧바로 문을 지으며 상대무(相對舞)상배무(相背舞)좌선무(左旋舞)우선무(右旋舞)등을 되풀이한다. 순조 28년 진작(進爵)에 예제의 창사에 실려 있다.

학무(鶴舞)

중요 무형문화재 제40호 학의 탈을 쓰고 추는 궁중무용 (宮中舞踊)의 하나이며 「학춤」이라고도 하며 향악정재(鄕樂呈才)에 속한다. 고려때 발생하여 궁중행사나 나례의식 등에서 연희되었다. 조선 선종 때에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기록될 만큼 규모가 커졌고 연화대무(蓮花臺舞) · 처용무(處容舞)와 연이어 공연되는 궁중무용 (宮中舞踊)의 대작 중에 드는 춤이다.
춤은〈보허자령(步虛子令)〉의 주악에 따라 청학과 백학이 지당면(池塘板) (네모진마루)앞에 동서로 갈라 서서 북향(北向)한다. 어미 두 마리의 학은 몸을 떨거나 부리를 부딪치는 등의 무작(無作)을 벌인뒤 지당판(池塘板) 앞으로 가서 연통을 쪼으면 연통(蓮筒)이 열리고 두 명의 동녀(童女)가 나온다. 이에 놀란학은 뛰어 퇴장함으로써 춤은 끝난다. 우리 무용 중 조류(鳥類)의 탈의 탈춤으로는 이 춤 하나 뿐이다. 새의 탈을 쓰고 추는 춤이기에 새의 행동에 어울리는 동작과 가락을 표현하는 독특한 예술성을 지닌 춤이다. 학의 탈은 광목과 닭털을 사용하여 만들기도 한다. 근래에는 백학(白鶴) 혼자만의 독무(獨舞)로 추는 경우가 많으며 지당판과 연통도 생략하는 것이 통례이다. 1971년 한 영 숙(韓英淑)이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궁중무용 중 대작인 학연화대처용 무합설 (鶴蓮花臺處容舞合設) 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점이 특징이다.

항장무(項莊舞)

본래 평안남도 산천의 잡극이었던 무극(舞劇)을 1873년 고종때 궁중에 들여와 연례무(宴禮舞)로 하였다. 중국 진말에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항우와 유방은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암투하던 차 홍문에서 연례를 갖게 되는데 ,이때 항우의 조카 항장(項莊)은 검무를 추다가 유 방(劉邦)을 죽이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항장무는 이 홍문연의 이야기를 무극화 한 것이다. 음악은 반드시 〈대취타(大吹打)〉를 쓴다.

아박무(牙拍舞)

궁중무용으로 타악기의 일종인 아박(牙拍)을 두 손에 넣고 박을 맞추어 대무(隊舞)하는 춤이다. 순서는 먼저 우기2명이 좌우로 나뉘어 춤추며 나가서 꿇어앉아 아박을 들어다 놓은 다음 일어나 염수 족도하면 〈동동만기〉를 아뢴다. 무악에 맞추어 두 기녀가 〈동동사(動動詞)〉의 서구를 부른 뒤 아박을 허리에 꽃고 족도한다.〈동동정월사〉를 부른다. 이어서〈동동중기〕에 맞추어 2월사부터 12월사 까지 노래한다. 춤은 매월 사(詞)에 따라 북향무(北向舞)·배무(背舞)·대무(對舞)·등으로 변한다. 이 춤은 고려시대 중국 송나라의 것을 본뜬 것이기도 하다.

향발무

향발무는 작은 타악기를 두 손에 하나씩 들고 치면서 추는 춤이다. 무원 8명으로 구성되며 음악은 일승월항지곡(一昇月恒之曲)를 쓴다. 고려 때부터 전해지며 조선시대의 각종 진찬·지연에서 무고와 더불어 빠지지 않는 춤이다 조선 말기까지 전해졌으며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무 고(舞鼓)

궁중무용(宮中舞踊)의 하나이다. 가운데 무고라는 북을 놓고 8명의 무원(舞員)이 여러 가지 모양을 짜가며 추는 춤으로 향악정재((鄕樂呈才)에 속한다. 이 춤의 유래에 대하여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고려25대 충렬왕 때 시중(侍中), 이 혼(李混)이 영해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바다 위에서 부사(浮査)를 얻어 이로써 큰북을 만들었는데, 그 소리가 굉장히 커서 이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선 성종 때에는 춤추는 사람이 수효대로 북의 수효에 맞추어 4고무(四鼓舞) 8고무(八鼓舞)등으로 발전하였다. 요즘은 여덟 사람이 북 하나를 놓고 추되 4사람은 원무(元舞)라 하여 양손에 북채를 들고 시종 북을 에워싸며 북을 어르거나 두드리며 나머지 네 사람은 협무(挾舞)라 하여 삼지화(三枝花)라는 꽃 방망이를 두손에 들고 가에서 방위(方位)를 짜고 들거나 춤을 춘다. 한편 이 춤에 쓰는 북은 교방고(敎坊鼓)를 약간 작게 만든 것으로 세 기둥 위에 북통을 세로로 올려놓는다. 북 통의 둘레는 청,흥,백,흑,으로 아름 답게 그려져 있다.

봉래의(鳳來儀)

조선 초기에 창제된 정재(呈才)를 위한 무용음악의 하나이다. 세종 대왕의 태조(太祖)창업의 공덕을 경송(敬頌)하여 친히 지은 춤으로 흔히(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로 창사(唱詞)로 부른다. 형식은 전인자·진구호 (進口號)·여민락(與民樂)·치화평(致和平)·취풍형(醉豊亨)·후인자(後引子)·퇴구호(退口號)로 구성된다. 전인자는 전주곡 (前奏曲), 후인자 후주곡(後奏曲)에 해당하며 진구호와 퇴구호는 춤의 앞뒤에서 죽간자(竹竿子)가 부르는 구호(口號)이고 나머지는 무원(舞員) 이 부르는 노래이다.
먼저 (장춘불로지곡(長春不老之曲)을 기악(器樂)으로 연주하면 죽간자 2명이나가(공손히 옛적일을 생각하니 억만년이 되도록 흡족하다)라는 선구호를 부른다. 다음 8명이 나가 해동장(용비어천가1장)인 (해동의 육룡이 날의실제 일마다 천복이시니 옛 성인의 사적과 잘 부합하도다)를 창사한다. 이것이 끝나면 죽간자와 원무(元舞)가 병창(竝唱)하여 야인장 용비어천가 제7장을 노래하고 끝나면 원무만이 근심장(용비어천가 2장)·원원장(용비어천가 3장)·석주장(용비어천가 4장)·금아장(용비어천가 5장)·적조장(용비어천가 10장)을 차례로 노래한다. 이어 몇가지의 무작(無作)이 더 있은후 죽간자와 무원이 처음의 배열로 서면 죽간자가(만 백성이 마음이 기뻐 길이 스평을 축하하네)라고 후구호를 부른다. 이것이 끝나면 죽자간과 무원이 퇴장 함으로써 춤은 모두 끝난다. 이 춤은 아름다운 무작 보다는 용비어천가의 악장을 많이 부르고 있다.

처용무(處容舞)

가면 무용의 한부분으로 가면무용(假面舞踊)의 하나이다. 신라 헌강와(憲康王)때 지어져 궁중나례(宮中儺禮)나 중요연례(宴禮)에 처용의 가면을 쓰고 춤추던 탈춤이다. 구나의(驅儺義)뒤에 추던 무용의로 대게는 (處容慢機)와 봉황음(鳳凰吟)에 맞추어 춤추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섣달 그믐날 (나례)에 두 번씩 처용무를 추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전해지는데 그 격식은 다음과 같다.
5명의 무원(舞員)이 5위방에 따른 청(東)·홍(南)·황(중앙)·백(西)·흑(北)색의 옷을 각각 입고 처용의 탈을 쓴 다음 한 사람씩 무대에 나가 한 줄로 선채 (처용가)를 일제히 부르고 노래가 끝나면 선 자리에서 5명이 두팔을 올렸다 내리고 서로 등져서 선다. 발돋움 춤으로 3보 전진하고 4방으로 흩어져 서로 등을 지고 추는 상배무 ,왼쪽으로 돌며 추는 회무(回舞)를 마친 뒤 중무(中舞)가 4방의 무원(舞員)과 개별적으로 대무하는 오방수양수무(五方垂揚手舞)를 추며 이 춤이 처용무의 절정을 이룬다. 이어 일렬로 북향하고 봉황음(鳳凰吟)을 제창한 다음 잔도들이 곡조에 따라 낙화유수무(落花流水舞)를 추면서 한 사람씩 차례대로 오른 쪽으로 돌아 퇴장한다.

처용가

동경 밝은 달에 새도록 노닐다가 들어 내 자리를 보니 갈래가 넷이로구나 아으 둘은 내 해이거니와 둘은 뉘 해이뇨 이런 적에 처용아비 곧 보시면 열병신이야 홧갓 이로다 천금을 주랴 처용아비야 칠보를 주랴 처용아비야 천금 칠보도 말고 열병신을 날 잡아 주소서 산이요 들이요 천리외에 처용아비를 비켜가고자 아으 열병대신 발원이시도다.

무애무(無 舞)

문무왕 때 고승 원효대사(617-686)에 의하여 불교를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부러진 호로를 어루만지면서 시중에서 가무 하였다는 설과 인도 즉 서역(西域)에서 사무 하였다는 설도 있으며 이것은 불교와 관계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무애란 거칠 것이 없다는 뜻으로 원효가 여러 촌을 돌며 교화 하였다는 것을 보면 무애가무 자체가 불교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고려조로 전승된 무애무는 불도(佛道)의 교화에서 벗어나 오락화 되어 여기의 향악재로 변천되어 기생이나 무동(舞童)들이 각각 호로를 하나는 오른손에 다른 하나는 왼손에 쥐고 대무(隊舞)하면서 무작(舞作)을 짓는데 뒤에선 사람은 주악(奏樂)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것은 신라의 민간 예술이 원효에 의해 불교화 되었다가 고려때 다시 향악으로 개작되어 향악정재로 상연된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다용불가어(多用佛家語)라는 것을 보아도 어디까지나 불교적인 색채는 어느 정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춘대옥촉(春臺玉燭)

궁중무용의(宮中舞踊) 하나이다.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막무로 원무 (元舞) 4명 집당 (執幢) 2명으로 구성된다. 먼저 음악이 연주되면 악사가 무동 (舞童) 에게 윤대 (輪臺) 를 돌려 전내 (殿內) 에 놓고 나오게한다. 이어 박 (拍) 의 신호에 따라 원무4명 은 보등 (寶燈) 을 들고 윤대의 둘레에 벌여 서고 집당2명은 운대의 동서로 각각 자리하여 춤춘다.

사자무(獅子舞)

사자의 탈을 쓰고 행하는 놀이의 춤이다. 악귀를 쫓고 복을 맞아들이는 놀이로 동양 여러 나라에서 민속화 되었다. 우리 나라에는 신라 초기에 당나라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이며 5세기경 신라의 우륵 (于勒) 이 엮은 (가야금12곡)중에는 이미 사자기 (獅子伎) 가 들어 있어 처음에는 기악 향악잡영 (鄕樂雜詠) 에도 사자무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 성행하게 된 사자무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의 중요한 민속 무용으로 되었으니 즉 신사예능 (神事藝能) 인 가구라 (神樂) 무용의 한 부분을 이루었다.



우리 나라의 사자무는 조선 말기에 궁중무용으로 채택될 만큼 널리 성행되어 왔으며 북청(北靑)사자놀이·봉산 (鳳山) 탈춤 · 영남오광대 (嶺南五廣大) · 하회 (河回) 별신굿 등의 가면극에서 안무되고 있다. 사자무는 대게 두사람 또는 세 사람이 들어가서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데 때로는 한 명이 하는 사자 놀음도 있다. 또 청사자·황사자 등 두 마리의 사자가 출연하기도 하며 그 역할과 행동도 지방에 따라 다르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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