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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눔 : [CEO에게듣다]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
 장오[운영자]    | 2009·05·22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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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http://www.gokams.or.kr/webzine/main.asp?sub_num=17&state=view&idx=195
  • “결심하면, 나머지는 깨끗이 지운다”
    [CEO에게듣다]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
    이승엽 _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 교수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은 발레리나 출신의 예술경영 CEO다. 그 이전에도 발레단이나 무용단의 최고경영자는 대부분 예술가 출신이었으니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특히 주목받는 것은 그가 가진 몇 가지 배경과 기대 때문이다. 그는 일본에서 자라고 교육받았다. 최연소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국립발레단의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퇴임 후에는 성격이 전혀 다른 정동극장 극장장을 거쳐 다시 국립발레단으로 돌아왔다. 그의 취임은 국립발레단의 변신을 예고한다.


    “이번엔 내가 손들고 나섰다”

    늦었지만 국립발레단으로 컴백한 것을 축하한다. 국립발레단을 이렇게 두 번 맡은 경우가 없었다.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고 바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벌써 ‘최태지 플랜’이 작동되기 시작한 것 같다.

    이번에 국립발레단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내 의지에 의한 것이다. 그동안 내가 맡았던 일들은 주로 주변 분들이 권해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손을 들었다. 정동극장에 사표를 던지고 단장 공모에 응한 것이다.

    손을 들었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내가 손들고 나섰으니 열심히 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그러면서도 하루하루가 즐겁다. 사실 2001년에 발레단에서 물러나 다시 돌아오기까지 참 힘든 시절이었다. 그 중에 특히 정동극장 극장장으로 일한 시기는 내게 큰 도전이었고 다시 겪기 어려운 좋은 경험이었다. 서양 장르인 발레 쪽에 죽 있었기 때문에 전통예술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정동극장은 내게도 그렇고 다른 분들에게도 낯설었을 것이다. 최태지하면 발레를 떠올리는 분들에게 정동극장은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정동극장 극장장으로 일한 4년여 동안 너무너무 행복했다. 내 극장을 가지고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게다가 정동극장은 발레밖에 모르던 내게 큰 자산이 되었다.

    ‘최태지 플랜’이 작동하기 시작했나?

    내가 다시 국립발레단을 맡겠다고 하면서 내세운 것은 명품화, 대중화, 세계화 등 3가지다. 특히 창작발레를 만들어서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싶다. 클래식 발레의 바탕은 탄탄해졌으니 그 위에 창작 레퍼토리를 갖고 싶다. 뮤지컬 붐에서 배우는 게 많다. 지방도 많이 다니고 발레 대중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겠다. 이 외에 중점을 두고 싶은 것은 발레학교다. 국립발레단에 발레학교를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새로운 자리에 철저히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발레리나에서 극장과 발레단의 CEO가 된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 비결이 있을 것 같다. CEO로서의 개인적인 장단점도 같이 말해 달라.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도 노력했지만 나를 이끌어주신 분들이 많았다. 한국 와서 활동하다가 결혼해 애기 낳고 쉬고 있을 때 당시 임성남 단장께서 서너 번이나 직접 나를 찾으셔서 돌아오라고 권하셨다. 결혼하고 아기까지 낳은 후에 다시 무대에 돌아온다는 것은 당시에 생각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분의 강권이 없었다면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김혜식 단장은 무용수에 머물지 말고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우기셨다. 김영수 당시 문화부 장관은 발레단 단장해야 한다고 밀어붙이셨다. 사실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렇지만 나를 지켜봐주시고 밀어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내게 장점이 있다면 새로운 자리에 철저히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무용가라면 에고이스트이고 나르시스트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제3자적 입장에서 자신을 보는 능력이 있는 편이다. 발레단 지도위원이 되었을 때 나는 무대에 서는 것을 멈췄다. 발레단에서는 겸해줬으면 했지만 후배를 위해 사양했다. 정동극장을 맡았을 때 나는 내 머리 속에 발레를 지웠다.

    CEO로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물론 좋은 공연을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공연이란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행복한 가운데 작업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꼬르 드 발레나 사무국의 실무자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주변에서도 도와줄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제 우리 내부는 어느 정도 다져졌으니 외부 활동을 더 증가시킬 예정이다. 기업인이나 사회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백스테이지 투어, 리허설을 참관하는 경영자 특강, 연습실에 모셔와 보여주는 활동을 많이 해왔는데 더 적극적으로 우리를 알리려고 한다. 이를 통해 토슈즈 문제도 해결되었다.

    토슈즈 문제라니?

    상징적인 문제 아닌가? 그동안 단원들에게 가장 값이 싼 러시아제 토슈즈를 두 달에 한 개정도밖에 지급하지 못했다. 이제는 최고 11만원까지 하는 영국제를 비롯해 단원들이 원하는, 본인들에게 맞는 토슈즈를 원하는 만큼 지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부지런히 말하자고 주장한다. 열 번 말하면 들어준다. 시간이 걸려도 들어준다는 생각이다. 문화부, 기획예산처, 국회, 기업 등 우리 얘기를 들어줄 만한 데는 무조건 간다. 아직도 한국말이 서툴지만 내가 할 일은 내가 나선다.

    직원들에게도 강조한다. ‘상대방은 내 마음 같지 않다’고.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바깥에 계신 분들이 그 사정을 알리 있겠나. 그래서 우리 홍보담당자에게도 사무실에 있지 말고 나가라고 한다. 시간은 걸려도 좋고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이끌어주신 많은 분들, 나는 복 받은 사람”

    무대에 설 때 지금 같은 일을 할 꿈을 꾸었나? 특별한 준비나 스케줄 같은 것이 있었나?

    이런 인터뷰를 하다보면 참 신기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다. 스스로도 놀랍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초심이라는 것은 그 일을 시작할 때의 마음이다. 나는 어떤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하면 나머지는 깨끗이 버린다. 선택 후에는 그 선택에 몰두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교육을 받고 국립발레단으로 옮겨온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결심의 계기가 있을 것 같다.

    한국에 온 것은 1987년이다. 일본에서 교육받고 발레 무용수로도 활약하던 중 일본발레협회 회장의 추천으로 말로만 듣던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것이다. 단원부터 시작해서 지도위원을 거쳐 마침내 단장직까지 올랐다.

    일본에 살면서 일본 이름도 있었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철저한 민족교육을 받았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셨다. 그런데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일본 정부의 국비장학생으로 내정되었다가 막판에 취소된 사건이었다. 각 부문에 한두 명만 뽑는 좋은 기회였는데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것이다. 나로서는 큰 쇼크였다. 그 뒤에 부모님께서 프랑스로 보내주셨지만 일본 발레협회 회장께서 한국에 국립발레단이 있으니 한국에 가서 활동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을 때 흔쾌히 결심한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에는 한국이 일본보다 발레수준이 좀 떨어지는 상태였는데 오히려 일본에는 국립발레단이 없고 한국에는 있었다.

    조국이라고는 하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터라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항상 외롭게 살았다. 심한 질시도 당했다. 국립발레단에 임성남 단장이 계셨기 때문에 참을 만했다. 그래도 일본에서 차별당한 경험이 없었다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학연 등 특별한 연고로 매이지 않으니 홀가분한 점도 있다.


    “스스로 한국적 발레를 만들기 위한 발레학교가 필요하다”

    무용부문은 정년이 가장 짧은 예술 장르다. (그의 맏딸도 한참 활동을 하고 있는 발레리나다.)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가?

    지금은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설립되어 잘해주고 있지만 우리 국립발레단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내가 단장이 되고 모두 4명의 전직 발레단원이 다른 직분으로 발레단에서 일을 하고 있다. 무대감독, 운영지원팀, 홍보팀, 물리치료 등 그동안 그들이 해온 일과는 다른 일이다. 이런 애프터 커리어(After Career)는 공부를 더하거나 학원을 운영하는 것과 같은 선택밖에 없었던 것에 비하면 큰 성과로 본다.

    발레를 10여 년 직업으로 한 사람이면 발레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발레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무대 스태프, 기획 등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 발레단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발레학교도 그런 차원에서 필요한 것인가?

    그렇다. 우리 발레단이 배출한 걸출한 스타들을 활용하여 재능 있는 인재를 기르고 발레단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 절실하다. 발레현장과 교육현장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루이 14세가 파리발레를 창단하고 피터대제가 키로프발레를 창단하기 전에 발레학교를 먼저 만든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도 러시아 모델을 벤치마킹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처럼 발레 수준도 높고 국제 콩쿠르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가 국립발레단에 발레학교를 갖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중국에서 <홍등>을 만들 때 왜 한국에는 한국적인 발레가 없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색하다.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할 때고 학교라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주어야 한다. 안무자도 키우고 발레 스태프도 키워야 한다. 좋은 작품을 올리고 싶은 것은 어떤 CEO도 원하는 바다. 그렇지만 발레학교는 좀 다르다.


    “나라를 위해, 관객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한참 뜸을 들이다가) 2001년에 단장에서 물러날 때 왜 발레 아카데미를 운영하지 않느냐고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발레를 통해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 마음 속에는 나라를 위한 일에 작은 일이나마 기여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정동극장 극장장 시절에도 국민들에게 봉사하자는 마음이 첫 번째였다.

    국립발레단으로 보면 티켓을 사서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이 주인이 되어 편안하게 예술을 감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팍팍한 세상에 그 순간만이라도 편안하게 예술에 빠질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잊을 수 없는 공연을 많이 만들고 싶다.

    이것이 나는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자리에 있든지 열심히,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관객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필자소개
    이승엽은 19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극장운영과 공연제작 일을 하다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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